[아 아침의 시] 톱니 몇 줄 - 천수호(1964~)

입력 2019-10-13 17:42   수정 2019-10-14 01:05

벌목장의 그 나무,

그 밑동에 톱날을 썰던 당신은
허벅지의 통증만을 느낀 게 아니었을 것이다

쩍쩍 갈라진 나이테가 롤빵처럼 풀어지지 않도록
톱질의 완급을 조절했을 것이다

이를 깨물고 악물어 박은
그 말씀만으로 마침내
노거수의 아름드리 밑동을
베어내곤 했을 것이다

이제는 늙어 수전증이 심한 아버지가
딸아, 덜덜덜 떨며 써 보낸 편지, 아



톱니 몇 줄

시집 <우울은 허밍>(문학동네) 中

이 시를 읽고 나니, 글을 쓸 때마다 백지가 된 한 그루 나무를 하염없이 톱질하는 기분이 든다. 수전증이 심한 화자의 아버지가 써 보낸 편지의 글자들은 톱니처럼 뾰족뾰족 삐뚤었을 것이다. 롤빵을 썰 때처럼 나이테가 풀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, 나무를 톱질하듯 힘겹게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린 아버지. 이를 꽉 깨물고 쓸 만큼 간절히 가닿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리라. 그 마음이 만들어낸 말씀은 노거수의 밑동을 베어낼 만큼 크고 강하다. 그러니 그 톱니 몇 줄 받아 읽은 마음이 저릿저릿하지 않겠는가. 아, 시를 쓰고 싶은 아침이다.

이소연 < 시인 (2014 한경신춘문예 당선자) >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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